ADHD 증상, 짜증과 급발진, 가족과의 갈등(ADHD 2편)
- 목차
- 자각 계기: ADHD? 내가??
- ADHD인 줄 몰랐지만 ADHD 증상이었다
- 일상에서의 증상
- 학생 시절 공부의 특징
- 직장 업무에서의 특징
- 가족관계-급발진과 상처
- 짜증쟁이
- 급발진의 패턴
- 확진의 기쁨과 기대감
자각 계기: ADHD? 내가??
제가 ADHD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. 그런 건 집중 못 하고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어린애들의 병으로만 알았습니다. 그러다 TV 오은영 박사 프로그램(아마 ‘결혼 지옥’)에서 성인 ADHD 사례로 등장한 사람을 본 아내가, 그 여자분과 제가 너무 똑같다고 하더군요. 영상 속 그분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간단한 일도 제대로 못 하고 꾸물거리기만 했습니다. 저도 출근 준비하는 데에만 40분씩 걸립니다. 밥 먹거나 샤워하는 것도 아닌데요.
저는 ‘조용한 ADHD’다. 어렸을 때부터 증상이 있었고,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ADHD입니다. 그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을 뿐입니다.
아내가 저장한 제 이름은 “짜증 내는 OOO”입니다.
ADHD인 줄 몰랐지만 ADHD 증상이었다
일상에서의 증상
제가 가진, 저만의 특이한 특징이라 하던 것이 결국은 ADHD 증상이었습니다.
-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못 한다
- 일의 추진력이 매우 떨어진다.
-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 한다.
- 급발진하여 주변 사람이 감지할 틈 없이 불같이 화를 낸다. (중요)
-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.
- 집중해서 책을 읽지 못 한다.
- 자극적인 것만 추구한다.
- 술을 좋아한다.
- 쉽게 짜증이 난다
학생 시절 공부의 특징
- 암기과목을 싫어한다.
- 끈기 있게 읽거나 암기하는 것을 극혐한다.
- 의욕이 없으므로 싫어하는 과목은 더욱더 싫어한다.
- 과목별 성적 편차가 심하다.
-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환장하므로 좋아하는 과목만 공부한다.
저는 수학을 좋아했고, 의욕을 잃고 게임만 하던 고2~고3 초기에도 수학은 탑급이었습니다. 공부는 그것만 했으니까요. 보통 ADHD는 뇌 발달이 늦고 집중을 못 하므로 공부를 못 합니다. 자명한 이치죠.
산만하고 공부를 못하는 것이 ADHD를 강하게 의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므로 제가 공부라도 못했으면 ADHD를 의심했을 텐데, 나름대로 공부도 어느정도 잘 했으니(중학교 반 45명 중 1~2등, 고등학교 반 40명 중 1~4등, 전교 1등도 한 적 있음) 아무도 ADHD라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. 암기과목이 평균을 깎아 먹어도 잘하는 과목으로 만회했습니다.
다음 편 글에 넣을 생각이지만,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하는 테스트 중에 CAT 검사(종합주의력검사)가 있는데, 그냥 지능이 높으면(순간 암기 능력이 좋은 등) 정상 판정 받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한 검사였습니다. 공부를 잘하는 건 (=지능이 높은 건) ADHD 증상을 가립니다. 제가 치료 시기를 놓친 주요 원인입니다.
직장 업무에서의 특징
업무에서도 ADHD는 발목을 잡았습니다. 그냥 성격적 특성인 줄 알았을 뿐, 이게 뇌 손상의 증거였을 줄이야.
- 복잡한 업무를 못 한다.
- 업무의 숙련도가 쌓이는 속도가 늦다.
- 새로운 업무를 맡는 것이 두렵고 하던 일만 계속하려고 한다.
- 여러 가지 복합적인 업무가 동시에 들어오면, 그중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모든 일을 망친다.
- 업무를 마감 기한까지 미룬다.
- 업무를 손을 대며 걱정은 하지만, 그 상태로 뭉그적거리고 더뎌 극한까지 밀린다.
- 연말에 업무가 쌓여있으므로, 정산의 시기가 오면 고통에 시달리며 야근해서 꾸역꾸역 처리한다.
이러니 직장에서의 생활은 고통이었고, 애초에 흥미도 없는 상태로 일을 한데다가 성과를 내고자 하는 욕구도 없으니 승진 같은 것이 빨리 올 리도 없는 깜깜했습니다.
그런데 중고등학교 때의 성적에 비하면 대학생~직장인 시기의 ADHD 증상이 매우 심했습니다. 이에 대해서는 다음 언젠가 편에 쓰겠습니다.
가족관계-급발진과 상처
짜증쟁이
위에서 언급했던, “급발진하여 주변 사람이 감지할 틈 없이 불같이 화를 낸다. (중요)“에 의해 배우자와 자식들은 나를 짜증쟁이, 급발진 쟁이로 인지합니다. 지금은 빈도를 많이 줄였고, 항상 노력하는 중이라 실제로 덜 할 텐데도 여전히 나는 그렇게 인지됩니다. 반복은 이렇듯 무섭습니다. 제가 당하는 입장이라고 거꾸로 생각해보면 너무 끔찍합니다.
짜증과 화를 토해내는 그 순간 저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, 이미 제 머릿속에서 나의 상황은 빠르게 합리화되고 상태를 탓하고 비난하며 기차 화통 같은 목소리로 울화를 쏟아냅니다. 사전에 상대가 파악할 만한 징조나 단서 따윈 없습니다. 마치 지뢰를 밟은 것 같을 겁니다.
이건 그 누구에게든 해서는 안 되는 죄악이며, 상대가 가족이라는 점에서 최악입니다. 인간이라면 저지르고나서 지나고나면 반성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, 그 분노 폭발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.
ADHD의 증상이니 원해서 이런 게 아닙니다만, 이런 짓을 하고 나면, 가족 관계는 엉망이 되고, 배우자에게 긴 시간 동안 미움과 원망을 받는 상태가 찾아옵니다. 분노와 짜증을 쏟아낸 지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후회와 잘못이 인지 되는데, 여기에서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든 사과해서 돌이키려 하든, 엎질러진 물 같고 터져버린 음식물 쓰레기봉투 같기에 이미 상황은 주워 담지 못합니다.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불신하게 되고 심하면 몇 달씩도 지속되는 갈등에 나도 상대도 고통 받습니다. 그리고 이 길고 지옥같은 고통은 또 저에게 또 다른 급발진의 씨앗으로 작용합니다.
급발진의 패턴
유치한 백문백답 같은 글에서 만났던 ‘싫어하는 것’ 칸에 쓸 말은 항상 명확했습니다. “귀찮은 것, 짜증 나는 것”. 귀찮고 짜증 나는 일에 저의 무기력(특히 당일 체력의 고갈)과 할 일의 중압감이 겹치면 급발진은 일발 장전된 것이죠. 트리거는 언제일지 무엇일지 저도 미리 알지 못합니다. 상대의 말 한마디일 수 있고, 바닥에 굴러다니던 아이 장난감일 수도 있습니다.
ADHD의 본능에 가까운 짜증의 반복은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줍니다. 가족과의 갈등은 본인에게도 자존감 상실, 자괴감, 우울이 찾아오고 무기력이 심해져 갈등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에 빠져듭니다. 이래서 성인 ADHD인 사람들의 얘기가 방송에 자주 소개되나 싶습니다.
(약간 다른 얘기를 하자면, 급발진의 그 ‘트리거’를 피하려면 집은 깨끗한 것이 좋습니다. 짜증 나지 않고 평온하니까. 나를 자극하는 요소를 가족이나 내가 미리 치워놓으면 급발진 빈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.)
확진의 기쁨과 기대감
1편에서 “내가 ADHD라니?!”라고 썼었는데, 스스로 부분은 사실 당황이나 놀람이라기 보다는 기대감이었습니다.
처음 ADHD에 대해 알아보고 병원을 예약할 때, 진로 직장 투자 육아 등 현생의 모든 일이 거지같아지는 느낌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한줄기 빛을 찾은 느낌이었고, 매우 기쁘며, 하루빨리 치료약을 먹고 싶었습니다. 치료만 받으면 직장도 투자도 가족생활도 모든 것이 좋을 것만 같았습니다.
단언컨데, 성인ADHD에게 이 약의 치료제는 그런 게 아닙니다. 꿈 같은 생각이었을 뿐.
다음 편에 계속.
ADHD 치료기 시리즈
- 시리즈 1편-ADHD 환자가 쓰는 ADHD 정의, 원인, 증상
- 시리즈 2편-ADHD 증상, 짜증과 급발진, 가족과의 갈등
- 시리즈 3편-ADHD 진단법 및 병원의 진단 과정
- 시리즈 4편-ADHD 치료제 콘서타 복용 후기, 부작용
- …계속